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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찾은 인생의 행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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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찾은 인생의 행운(1)과 마찬가지로 책의 나열 순서는 순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7.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리처드 도킨스 (생물학)

Source: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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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페이지를 읽은 후 나는 서둘러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작임을 직감한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쇼파에 누워 편하게 읽는 것보다 공부하듯이 읽어야 저자의 생각을 조금은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예외를 두지 않는 이런식의 논리와 그러한 저자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논리를 뒷받침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 전부터 엄청난 양의 주석에 압도 되는데 이 주석들은 1976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책 속의 각각의 주장들과 그것들과 관련된 학계의 비판에 대한 저자의 반박으로 구성되어 있어 30년 동안의 연구 흐름을 저자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맛볼 수 있다. (주석에서 도킨슨은 첫 번째 판의 주장들에 비해 약간 유순한 입장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그의 원판 주장이 맞다는 것으로 맺음된다.)

인간과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들 역시 결국은 ‘이타적인 가면을 쓴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 많은 실험과 예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대부분 이런 예들은 차용된 지식이 아닌 리처드 도킨스 실험실에서 직접 시뮬레이션한 결과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이타적 이기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근친도(감수 분열은 아래 세대에 정확히 1/2의 유전자를 전달한다. 즉, 할아버지 유전자는 나에게 정확히 1/4이 있다)의 개념을 사용하여 “왜 외삼촌이 삼촌보다 조카를 더 사랑하는가”를  설명하는데 그 예와 근거가 상당히 신선하며 자극적이다.(외삼촌은 내가 엄마-외삼촌의 유전자를 가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삼촌-삼촌의 유전자를 가진 아빠-이 내가 아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확신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도킨슨은 생각을 전파하려는 유전자를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이라 정의하고 동물들과 다른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기적인 특이성을 설명한다. 도킨스에 의하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와 같이 나의 생각의 유전자를 전파하기 위한 이기적인 활동일 뿐이다.

8.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경영학)

혁신 기업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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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시무시하다.” 인텔의 창업자 엔디 그로브(Andy Grove)가 이 책을 두고 한 이 말이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다.(그는 무시무시한 이 책을 덮자마자 책의 저자인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인텔의 자문 교수가 되어주길 요청했다고 한다)

월마트(Walmart)에서 운영하고있는 창고형 할인 매장인  Sam’s club이 동네에 있어 자주 가는 편인데 그곳에서는 가전 제품과 식료품 뿐 아니라 심지어 청바지와 같은 의복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음식을 사러 오는 고객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판매되는 의복류가 궁금해 청바지를 살펴 보니 유명 상표가 아니라 그런지 일반 쇼핑몰의 그것들보다 고급스러움은 떨어지지만 한 벌에 $14.99 라는 싼 가격뿐 아니라 양질의 옷감을 가지고 있어 평상복으로 입기엔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만약 지금이 1965년이라면 오직 백화점에서만 구매 가능했던 양질의 청바지를 현재는 더욱 쉽고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의 나의 경험은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예다. 파괴적 혁신이란 기술의 진보 속도가 시장(소비자)의 진보 속도보다 빠른 현대 기술 산업의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기업들은 이미 기술의 진보에 만족한 소비자와는 상관 없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수준의 기술 발전을 달성 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며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소비자 스스로는 본인이 이미 만족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은 계속해서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 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존에 외면 받던 뒤떨어진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불필요한 혁신(존속적 혁신)에 집중하고 있는 기존의 선도기업을 파괴하는 현상을 발견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전학에서의 초파리 연구와 같이 세대교체가 가장 빨리 이루어지는 분야인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을 철저하게 분석하였으며 왜 위대한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놓칠 수 밖에 없는지를 자원 분배, 유통, 조직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책은 파괴적 혁신에 대한 이론과 현상 파악에만 그치지 않고 기존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특히 마지막 장에선 앞서 그가 제시한 해결책들을 파괴적 혁신 모델 중 하나인 전기차 시장에 직접 적용하는 과감함을 선보이는데 실제로 1997년에 출판된 이 책에 포함된 대부분의 전략들이 현재 전기차 시장에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9. 꿈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 분석학)

Source: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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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옷걸이에 걸어둔 옷을 하나씩 입기 시작했다. 갑자기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옷걸이에 걸려 있었던 중절모가 보이지 않는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일단 모자를 계속 찾는데 시간을 소비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무의식이 내 의지에 반하여 내가 좀 더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로서 수 많은 꿈 상담을 통해 꿈은 ‘소망 충족을 하려는 무의식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꿈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망의 기저에는 성(性)에 대한 욕망과 기억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찬 음침한 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 그에 의하면 위의 꿈에 나타난 옷걸이도 성기와 관련지어 해석될 것이고 평생 한 번도 써본적 없는 중절모는 어릴적 본 중절모를 쓴 신사에 대한 나의 동경을 나타낸다.

소망 충족이라면 항상 행복한 꿈만 꾸어야하지만 아프거나 무서운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소망 충족을 왜곡’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형벌을 받고 있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현재 억압 속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본인을 무의식이 혼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꿈을 만드는 소재에 대한 언급에서 그는 “본인이 현재라고 생각하는 미래는 꺼지지 않는 소망에 의해서 저 과거와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아마도 사람들이 데자뷰(deja vu)라고 부르는,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본 적이 있는 모습에 대한 그의 설명으로 보인다.(데자뷰란 표현은 이 책에서 언급 되지 않는다.)

책에서 언급되는 그의 꿈에 대한 해석은 지나칠 정도로 성과 관련된 소망 충족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무의식과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조차 무의식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10.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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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하고 본받으려 한다해도 내가 쓸 수 없는 문체와 내용을 가진  책이 있다. 그것은 장영희 교수님이나 이어령 교수님이 쓴 글처럼 문장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깃든 글들이다. 장영희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알기 전 그녀의 신문 칼럼 ‘장영희의 영미 시 산책’을 통해서였다.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Rossetti)의 시, ‘무엇이 무거울까?(What a heavy?)’가 너무 아름다워 신문에서 오려 내 책상 왼편에 붙여 놨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장영희 교수님의 시 소개였다.

이 책은 힐링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전인 나의 대학교 시절부터 내가 힘들 때마다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책이다. 장애인인 저자는 스스로 남들보다 욕심꾸러기이고 이기적이라 말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능력이 있다. 이 책 속에는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한 그녀의 공부와 삶을 통해 그녀가 독자에게 말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법’이 들어 있다. 책을 보는 내내 시종일관 온화하면서 지적인 그녀의 필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서강대학교 신입생 면접을 보면서 한 학생에게 “문학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가?”라 묻자 그 학생은 “문학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는 대답이 왔다고 한다. 그녀의 병세가 심해졌을 때 쓴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그녀는 그녀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덤이 아니라, 없어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학생과 장영희 교수님의 말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는, 있어서 좋은 덤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11.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마이클 센델(법)

Source: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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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right thing to do? 하버드 대학의 유명 강좌 중 하나인 ‘Justice’ 수업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한 후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선택해야 할 때, 대부분의 경우 무엇이 옳은 답인가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다만 선택이 어려울 뿐). 하지만 샌델 교수가 설정하는 다양한 철학들에 기반한 시나리오들은 무엇이 옳은가를 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몇년 전 EBS에서 그의 강의를 방송했었는데 강의 속에서 다룬 예의 다수가 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Justice 온라인 강의)  책에서는 크게 3가지 철학적 관점(공리 주의, 자유 주의, 목적론)에서 무엇이 올바른 정의인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 정의에 대한 그의 소신을 밝힌다. (책의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글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참조)

12. 파우스트 (Faust),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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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잔을 목에 넘기며 지글지글하게 익어 가는 닭갈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닭갈비를 직접 먹는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재미있는 시리즈의 소설을 한 권 보는 동안 책장에 꽂혀 있는 나머지 아홉 권을 바라보는 느낌과 같다. 이렇게 행복한 느낌을 오래 유지하고픈 소망 때문인지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은 500여 페이지의 희곡이지만 하늘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교적 이야기, 현실의 지고지순한 여인 그레첸과의 멜로 드라마, 그리스 역사의 한 장면 속(트로이 성을 공격하는 아가멤논왕)으로 들어가는 역사 이야기, 그리스 신화 시대의 인물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헬레나, 이카루스) 환타지 등 책 열 권에 담아도 모자랄만한 거대하고 웅장한 대서사시다.

파우스트는 희곡이기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는 연극 대본을 읽는 느낌이 들어 소설처럼 몰입해 읽기가 어렵지만 어디로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극 전개가 그러한 어색함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와 내기한 파우스트 박사가 결국 그 유명한 대사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란 말을 하게 되어 비극으로 끝나는 듯 하지만 그레첸의 사랑에 의해 그는 구원을 받으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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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런 블로거가 되지 말자고 정한 몇가지 원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책 소개에 관한 것이었다. 책 소개는 저자 소개와 줄거리 요약에만 치우치기 쉬어 내 블로그가 책과 저자에 대한 단순한 홍보처 및 정보 제공처로 머물게 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수 많은 정보들을 다양한 블로그를 통해 얻어 왔지만 내가 기억하는 블로거는 손에 꼽는다는 사실이 이런 생각을 더 지지하게 했던 것 같다. 이런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12권의 책들은 가급적 책을 요약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내가 책을 읽을 당시에 느꼈던 주관적 관점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려 노력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며 쓴 글, ‘블로그를 해야하는 4가지 이유‘에서 나는 블로그를 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로 나와 같은 생각 또는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학창 시절, 지하철에서 ‘엘러건트 유니버스(Elegant Universe)’를 읽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곤 무심코 말을 걸어 서로 내릴 때까지 그 내용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 둘 모두를 흥분시켜 생전 처음 본 사람과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책’이라는 매개체가 만들었던 특별한 동질감이 그것을 가능하게한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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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년 전, 책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가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작성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3가지 관점의 정의론 및 저자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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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책을 읽고 계시거나 이미 읽으신 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이 책,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인터넷 독자서평을 보면 이 책은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하지 않는다는 글이 많은데요.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아주 명확하게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논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공동체적인 정의”가 정의의 최선이라 밝힙니다.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재미있는 가설들 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흥미로운 예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예를 보면,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가치, 징병제와 모병제, 콩팥 판매, 안락사, 해외 원정 대리모 출산, 변기 수리비로 5만 달러를 낸 할머니, 동료를 먹으며 살아 돌아온 어부들, 마틴 루터킹이 대학원을 갈 수 있었던 이유, 기부 입학, PGA의 휠체어를 탄 골프선수 경기 허용, 테러리스트인 형을 고소한 동생 등 입니다.

이것은 우리 생활에서 항상 논쟁거리였거나, 그냥 지나쳤던 사건에 대해 과연 올바른 결과(정의)는 무엇인가를 같이 고민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결말인 공동선의 정의로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1. 정의를 규정하는 가치관, 2. 그것에 대한 반박(문제점), 그리고 3. 적용 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문제점이라 제시하는 근거 (2) 역시 정의 가치관 (1)에서 옹호할 기회를 줌으로써 문제점의 문제점을 논합니다. 이처럼 반론에 반론의 과정이 엎치락 뒷치락 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재미있는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포함된 정의의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리주의 관점에서의 정의  2. 자유주의 관점에서의 정의

3. 목적론적 관점에서의 정의 4. 공동체주의 관점에서의 정의

위 네 가지 정의는 철학적인 관점이라 어려워 보이나 샌델 교수는 흥미로운 예를 가정하거나 또는 위의 예처럼 실제 일어난 일로 위 네 가지를 설명합니다.

1. 공리주의 관점에서의 정의

공리주의는 한때 많은 사랑을 받은 관점이지만 너무나 큰 그리고 발견하기 쉬운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수가 다수의 행복 때문에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개개인의 인간성 무시 또는 2. 모든 것을 단일 통화(공리)로 계량화) 이것이 그동안 많은 지지를 받은 이유는 공리주의적으로 생각하면 모든게 그럴 듯 하고 설득하기 쉽기 때문 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류를 알면서도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예를 들어, 다수결은 진리나 상호간의 이해 타산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리주의에서는 벤담(Jeremy Bentham)과 밀(James Mill)의 정의론을 이야기하는데,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가 위에서 언급한 ‘소수가 다수의 행복에 희생’ 해야하는 문제점에 의해 비난받자 밀은 인간성을 존중한 공리주의로 이것을 보완 합니다. 또한 그는 공리를 저급과 고급 쾌락으로 구분하지요. 즉,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말합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투견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공리보다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공리를 더 높은 공리로 봐야한다는 관점입니다.

2. 자유주의 관점에서의 정의

자유주의적 관점의 정의는 크게 칸트(Immanuel Kant) 형님과 롤스(John Rawls) 형님이 말씀한건데요. 칸트 형님은 자유를 최고의 정의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철학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게 이 칸트 형님인데요. 칸트는 같은 말인데도 항상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항상 무릎을 치게 합니다. 샌델교수도 칸트의 자유주의적 정의를 이야기 할 때 그의 관점에서 문제점들을 옹호 합니다. 칸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도덕, 자유, 이성입니다.  이걸 이야기하자면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데요.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도덕은 ‘끌림동기’와 ‘의무동기’로 나누며 ‘의무동기’여야 정의롭다”고 합니다. 즉, 어떤 대가를 바라고 착한 일을 하는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다’ 입니다.

둘째, 칸트의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다른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딸기맛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먹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딸기맛을 좋아하는 생물학적인 요인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자유입니다.

“이성에는 ‘가언명령’과 ‘정언명령’이 있으며 ‘정언명령’이 정의롭다” 할 수 있습니다. 정언명령이란 ‘내 행동의 원칙’인데요, 이 원칙이 또한 보편적 법칙이어야 정언명령이 성립합니다. 칸트의 유명한 말인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처럼 자유는 자유인데 내가 아무리 자유롭게해도 보편적 입법의 원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성인군자 같은 이야기죠.

칸트는 천재여서 이처럼 완벽한 자유주의적인 정의를 성립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문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강조하면서 또 다른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샌델 교수 역시 이런 완벽한 법칙 속에서 행동할 일반인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이것은 너무 힘든 자유(?)를 강요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칸트는 그가 말한 것처럼 살다가 죽었습니다.

롤스는 칸트와는 조금 다른 자유주의적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정의론에서 자유는 자유인데 그 이전에 무조건적으로 평등한 조건이 바탕이 된 이후의 자유가 정의롭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이것을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강남구 학생이 강북구 학생보다 수능 점수가 1점 높다고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 건 평등치 못하다라는 관점입니다. 저자는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예를 들어, 진보하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강남구에 사는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옳바르다는 다른 관점의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사고의 유연함을 보여줍니다.

롤스 정의의 핵심은 정의로운 사회계약입니다. 즉, 이런 원초적 평등을 전제로 자율과 호혜,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사회 계약만이 정의롭다고 정의합니다. ‘만약 자동차가 망가졌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와서 차를 고쳐줬을 경우 수리를 받은 사람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던짐으로써 계약에 있어 합의가 작동할 수 있는 두가지 조건인 자율과 호혜를 재밌게 설명합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텔로스(telos, 목적)에 의해 정의를 바라봅니다. 텔로스는 플룻(flute)은 음악을 잘하는 사람을 위해 생겨난 것이기에 이것은 잘 부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목적론으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 목적론적 근거 아래 정의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목적론적 관점의 정의론의 문제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범했던 오류처럼 노예제를 옹호하거나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노예는 노예로 태어났고 여성은 정치적으로 열등하기에 그 목적에 맞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텔로스가 적합하다라는 잘못된 전제 때문에 기인한 상당히 위험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본성에 맞는 역할을 사회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Source: Justice for All: A Class in Ethical Sudoku     @Wall Street Journal

4. 공동체주의적 정의

샌델교수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는 저자가 어느 학자와 공동으로 만든 말이라고 하네요. 정의를 논할  때 연대 의무나 소속 의무를 빼놓고는 정의를 논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미국의 한 정치인이 테러범인 형의 은신처를 말하지 않는 것은 이런 소속 의무 때문이고 이는 비난 받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서사적 관점에서 정의를 논해야 하는데요, 만약 어느 한 일본인이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죄는 단순히 과거 조상의 잘못이고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을 위해 보상을 할 의무가 없다라고 말을 했을 때 인간은 서사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위의 일본인은 단순히 자신과 과거를 분리하려는 시도이며 그것은 자신과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일 뿐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동체주의란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상관 없이 도덕적으로 한데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공동선(공동체주의)의 관점에서 정의는 시장의 도덕적인 한계를 인식한 정부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의 재분배가 아닌 부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 공공기관과 공공서비스를 일으킴으로써 부자와 빈자 모두가 그것을 똑같이 이용할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와 공리주의에서 항상 논란되었던 종교 문제도 공동선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공정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여론과 맞물려 우리 사회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사회 현상을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책은 그것을 생각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처럼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명환 장관 딸의 공무원 특채 채용 사건이나 한겨레 신문의 ‘신정환을 위한 변명’ 같은 글도 이 책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정말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저같은 일반인도 그 누구의 말처럼 아테네 학당에서 그 유명한 철학자와 토론하듯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보(liberal)와 보수(conservative)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덕관/정의관이 왜 서로 다른지 궁금하진 분들께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의 바른마음(The Righteous Mind)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