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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 & Sangah's Inspiration Story

닥치고 정치 VS 자유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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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예술가, 김연아’ 명제

“아사다 마오의 ‘경기’는 스포츠라고 생각되는데 김연아의 ‘연기’는 예술이라 생각해.” 한 모임에서 친구가 말했다.

그는 어떤 장면과 내용이 ‘예술’로써 평가 받아야 하는지 친구들에게 주입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함께 있던 다수가 그의 말에 맞장구 쳤으며 그녀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계속 이어졌다. 순식간에 그녀가 개개인에게 준 감동의 ‘주관적 관점’이 ‘객관화’된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근거가 되고만 것이다. “그녀가 인기 있는 구기 종목을 한 것도 인간의 체력 한계를 넘어선 것도 아니다.” 또는 “빙판 위에서 3바퀴 반을 회전하는 것 혹은 그보다 반 바퀴 더 도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경지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라 말하는 이는 왜 없었던 걸까. 예술이 아니어야 하는 근거는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무비판적인 수긍을 했을까. 명제의 잘못됨을 지적했을 경우 예상되는 인간관계 결여를 우려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반응의 이유는 이 명제 스스로가 가지는 ‘반박 불가능한 성격’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치 반박하는 순간 이 명제가 가지는 함정인 모두가 공감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혼자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예술에 문외한으로 매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아방어기제(self-defense mechanism)가 작동한 것처럼.

선동의 도구

나는 이런 부류의 명제를 ‘예술가, 김연아’라 부른다. 이것은 반대되는 생각을 원천 봉쇄하여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용어나 예를 일컫는다. 우리는 최근 네트워크 과학혁명을 통해 정보 피라미드의 최상류층과 일반 대중이 소유하는 정보의 질과 양의 차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논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얼마나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받는가이다. 다시 말해 비록 옳지 않음으로 판명 날지라도 다수의 공감을 받은 논리와 정책이 사회의 방향성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까운 일상에서 논리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예술가, 김연아 명제’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만약 정치적 또는 선하지 못한 목적을 가진 경우라면 진실과 진리1)를 왜곡하는 최적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바로 잊혀졌던 옛 시절의 단어인 ‘선동’의 도구로써.2)

다른 분야의 김연아 명제들3)

예를 들어 “진리는 무거워 젊은이들만 그것을 나를 수 있다.” 는 말이 있다. 이 말 역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나를 수 있는 ‘중력에 의한 무게’와 진리의 심오함을 나타내는 ‘깊이의 무거움’ 속에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음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이 명제는 특히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나 촛불 집회 독려에 많이 쓰이고 있다. 교육분야의 김연아 명제는 다음과 같다. ‘1+9 = ? 를 가르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 ? + ? = 10 이 되는 핀란드의 열린 교육’. 이건 무슨 얼토당토 않은 말인가?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면 1+9=10을 모를리 없을뿐더러 두 수의 합이 10이 되는 경우의 수는 집합이 자연수, 정수, 그리고 유리수인 경우에 따라 나눠가며 답을 정리하는 더 열린 교육(?)을 우린 받아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선진 핀란드 교육을 따라 해야 한다며 세계 역사와 경제 그리고 스포츠에서 별로 주목 받지 않는 나라를 칭송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에 대해선 너무나 쉽게 비하하고 있는건 아닐까. ‘가고 싶은 군대’도 선전의 표어이다. 선후임병 간에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일과 후에는 군대에서 학점을 딸 수 있다는 군대. 하지만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어느 누가 가고 싶어 하겠는가. 군가산점 부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가 주장했고 실제로 많은 장병들이 지금도 이 표어 아래 군생활을 하고 있다. 4)

내가 지금 아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나이가 들면 킴벌리 키버거(Kimberly Kirberger)의 시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며 후회한다. 하지만 특정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조작되는 진실들을 보면, 조금 먼저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아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 아는 것이 진실이라 생각한 대중의 실수를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히틀러가 등장했던 당시의 독일 국민은 서구에서 가장 높은 지식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교육은 광범위하게 실시 되었으며 교육열 또한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반유대주의는 열렬히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가까운 우리의 예를 보면 민주적 절차 속에 91.5%의 절대 다수가 지지한 유신헌법(투표율 91.9%)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신군부 세력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얻은 국민 주권(6.29 선언)을 다시 신군부 세력에게 돌려준 국민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5) 대중은 얼마나 이런 선동을 구별할 수 있는가. 수많은 집회(여기선 이해타산적이지 않는 집회)에 나오는 대중은 이런 진실을 알고 있는가. 그들이 혹시 ‘진리는 어렵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6) 는 ‘예술가, 김연아 명제’에 현혹되진 않았을까. 그들이 나중에 틀렸음이 밝혀 진다면 그들은 후세대에게 어떤 책임을 지을 각오가 되어있는가.

중도의 탄생

최근 우리 사회는 이전 세대의 문제인 ‘지역 감정’은 완화 되었지만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간의 대립이 점차 심해지는 양상을 띄고 있다. 이 대립의 해결책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아니 해결책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방향성과 공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진영이 추구하는 목적만 선하다면 방식의 차이일 뿐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오히려 사회는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대립의 다른 이유로는 좌와 우를 명확하게 정의한 교과서나 그런 지식인의 부재를 들고 싶다. 이 부재는 중도라는 새로운 세력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자유’, ‘복지’ 그리고 ‘평등’ 이라는 좋은 용어를 서로 차지하려는 논쟁으로 연결이 된다.7)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지식인과 그를 지지하는 대중은 많지만 그 대중과 지식인이 좌와 우의 이념과 목표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런 소모성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중도 세력은 좌와 우를 이해하지 못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좌와 우를 정확하게 이해한 균형감을 가진 세력이어야 한다.

닥치고 정치 vs 자유의 적들

최근 우리 사회의 좌와 우를 대표하는 이는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 총수와 ‘자유의 적들’의 전원책 변호사다.8) 많은 판매부를 기록한 ‘닥치고 정치’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듯이 딱딱한 조국 교수의 저서 ‘진보집권플랜’의 답답함을 느낀 저자가 쉬운 언어로 대중과 쉽게 소통하기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우파 세력, 특히 이명박 정권의 거짓과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고 부수적으로 한국 진보 세력의 역사와 특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김어준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고 읽기도 쉬우며 마음을 움직인다. 반면 ‘자유의 적들’은 ‘좌파 비판’이라는 부제답게 “좌파에 경도되었거나, 가짜 보수의 허울 속에 갇힌 인문학도들을 해방하기 위해 썼다.” 전혀 다른 목표와 해결책을 이야기하지만 두 저자에게는 공통 인식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그 울타리의 보호 속에서 건전한 경쟁을 피하고 비도덕적인 이득을 취하거나 기득권을 영원히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의 ‘이너서클(Inner Circle)’이다. 정계, 재계, 그리고 사법부로 구성된 이너서클이 중소기업을 죽이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을 용이하게 하고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재벌들의 재산 상속을 용인하고 있다.9) 소수의 비도덕적인 그들만의 리그는 좌파의 입장에선 사회를 계급화하고 대중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으며 우파의 입장에선 21세기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유발하는 사회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의식있는 삶(Mindful Life)- “To know more, notice more.”

동물학자이자 제인 구달 박사가 쓴 책 ‘희망의 밥상’의 부제는 ‘A Guide to Mindful Eating’이다. 채식주의자인 그녀는 결코 채식주의를 권하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의 부제처럼 ‘의식’을 가지고 음식을 먹을 것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책을 통해 내가 대학교 때 값 싸게 먹은 학교 앞3천원짜리 돼지갈비는 성장 호르몬을 맞으며 살을 찌우고 병이 들지 않기 위해 항생제를 먹었으며 많은 새끼를 공장처럼 찍어내기 위해 움직일 수 없는 분만책 속에서 출산을 한 돼지고기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값싼 뷔페에서 제공되는 거위간(푸아그라)은 공기압축기로 부풀린 간이며, 내가 좋아하는 값 싼 왕새우는 베트남과 태국에서 대량으로 양식한 새우였을 것이다. 아무도 양식 연어가 정자수를 감소시키고 암을 유발시키는 다이옥신을 포함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항생제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스럽다.

오늘 받은 관리비 고지서에 한 달간 쓴 전기, 197kwh와 함께 20,500원의 전기세가 청구되었다. 전원에 연결된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이 소모되는 전력을 대기 전력이라고 한다. 내가 쓰는 LCD TV와 모니터의 대기전력은 1와트 미만이고 데스크탑은 2와트였다. 예상컨데 우리집의 대기 전력을 합치면 적어도15와트는 될 것 같다. 이것은 한 달이면 10.8kwh(15w x 24h x 30일)가 된다. 전원만 분리해도 5%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으며 만약 전자제품 구매 시 소모 전력을 조금만 꼼꼼하게 본다면 이보다 훨씬 큰 절약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매 겨울과 여름마다 들리는 대규모 전력난 소식과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30퍼센트(2011년 기준 30.3퍼센트)가 넘는 전력을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시민단체는 해결책 없이 원전건설을 반대하고 정부는 수치상의 불가피성을 홍보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하여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하는게 아닌 얼마나 전력을 줄이는가에 있다고 본다. 한 달 1,000원을 아끼기 위해 궁상을 떠는 것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 건설을 막기 위해선 사회 전체가 수준 높은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10) 나는 ‘의식있는 삶’(Mindful Life)의 출발선에 와 있다. 나는 이제 진실을 왜곡하는 선동과 선전을 구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홈플러스에서 아이슬란드산 새우를 구매하고 이 글을 쓴 후 전원을 분리하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1) 진실과 진리는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사전적 정의는 진실은 ‘사실 그대로의 실체’ 이지만 진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이고 참된 이치’ 이다. 즉, 진리는 새로운 법칙이 탄생하면 기존의 진리가 수정이 될 수 있는 반면 진실은 수정 불가능한 사실 그 자체이다. 이 말대로라면 ‘학자란 진리를 찾는 사람이고 지식인은 진실을 찾는 사람’이라는 명제가 옳을 수 있다.(전원책, ‘자유의 적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임무는 ‘언어 분석’뿐이라 했다. 용어의 뜻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사고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그의 말처럼 언어를 분석하는 것은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임무이다. 예를 들어 학교의 교실(敎室)과 교과서(敎科書)는 각각 가르치는 장소와 가르치는 책을 의미함으로 선생 쪽에 치우친 말이다. 반대로 학원은 배우는 집이다. 이처럼 용어를 통해 공교육은 가르치는 선생 쪽에 사교육은 배우는 학생 쪽에 지향성을 보여준다.(이어령, 젊음의 탄생) 동양의 승강기(昇降機)와 서양 Elevator는 동양의 균형성과 서양의 진취성을 알 수 있다. “Elevator을 타고 내려가야지”라는 말은 올라가는 것(Elevator)을 타고 내려간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

2) 물론 ‘예술가 김연아 이야기’에서의 논리자의 목적은 정치적이지 않고 순수하다. 선동을 경험하고 싶은 분에게 전직 국회의원 정봉주가 쓴 ‘BBK 완전정복’을 권한다. 1980년대 삐라 삽화 느낌이 드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옥중에서 좌불안석 노심초사하며 이 글을 쓴 전직 국회의원의 격이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

3) 편견 중에 스스로 편견인줄 아는 것을 ‘악의의 편견’이라 한다. 예를 들어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자는 게으르다’와 같은 생각은 누구나 편견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악의의 편견’이다.(전원책, 자유의 적들) ‘김연아 명제’도 일종의 ‘악의의 편견’이다. 하지만 의도가 반드시 악하지 않더라도 의도된 목적을 위해 스스로 진실이라 잘못 믿고 있는 경우도 해당된다.

4) 군 가산점은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났고 그 후 2번의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두번 모두 기각되었다.

5) 나는 살면서 본인이 선택한 선거 결과로 인해 훗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선택을 후회하고 미안해한 기성세대를 본적이 없다. 아마도 그것을 부정 했을 경우 자기 인생의 전체가 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6)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일상에서 발견된 우연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리가 발견되는 과정 중 쉬웠던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Nicholaus Copernicus)의 지동설이 받아 들여지기까지 천동설로부터 2,000년이 걸렸고 아인슈타인은 천재였지만 특수상대성 이론을 터득가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프톨레마이오스(100~170)의 지구 중심의 행성 운동 이론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그로부터 1,000년 동안 천문학의 진보를 가로막는데 기여를 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중심이 되는 가설을 제안하였지만 1616년 가톨릭 교회는 그의 저술을 금서 목록에 포함 시켰으며 이 금서령은 1835년까지 유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이론 400년 전에는 아르키메데스가 그와 같은 이론을 제안하였으나 지구 중심의 우주관 역시 400년 후에서야 이론화 되었다. (칼세이건, ‘코스모스’) 1952년 생클랜드(R.S. Shankland)에게 보낸 아인슈타인의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해 어림잡아 “10년간을 연구해 왔다”고 말했다.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7) 역사적으로 보면 우파는 자유를 보장한 ‘불평등할 권리’를 주장한다.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는 의회 연설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호도해도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해질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고 했다.(전원책, 자유의 적들) 즉, 우파의 입장에선 ‘불평등할 권리’가 ‘평등권’의 핵심이다. 반면 좌파 혁명인 프랑스 혁명(1789)과 볼세비키 혁명(1917)을 보면 평등과 분배를 주장 한다. 물론 여기서의 평등은 우리 시대의 평등인 ‘기회의 평등’이 아닌 불법적인 부의 축적을 이룬 소수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그들의 ‘부를 분배’하는 성격이다. 이처럼 자유는 우파의 용어이지만 좌파 역시 자유를 부정하지 않으며 평등은 좌파의 용어이지만 우파 역시 좌파와 다른 평등권을 주장한다. 첨언하자면 우파는 점진적이며 좋은 것을 지키려하고 좌파는 급진적이며 나쁜 것을 바꾸려고 한다.

8)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인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김어준에 비해 소통력이 약해 오히려 ‘닥치고 정치’라는 책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나 그의 대표 저서들은 그의 전공인 미학에 초점을 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선 책에서 나타난 생각과 철학을 비교하는 관점이기에 김어준을 선택했다. 보수의 지식인으로서 전원책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9) 검찰과 삼성과의 관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예를 보면 불법적인 행위를 한 당사자 스스로가 검찰에게 죄를 알렸음에도 정계와 사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너서클’ 횡포의 전형적인 예이다.

10)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 공장은 원자력 발전에서 공급되는 전기의 수요처이다. 특히 전자 부품을 만드는 기업은 전기의 주파수 범위가 불안정한 석탄이나 화력보다 원자력발전을 선호한다. 이처럼 원자력 발전 건설이 개인의 전기 절약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절대적인 전력 소모는 개인이 소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런 인식 자체가 중요하다.

Written by Minki Jo

6월 22, 2012 , 시간: 12:4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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